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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만3

(7장, 반제회의, 혹은 본디오 빌라도) 빌라도는 손을 물로 씼으면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했다. 나(아이히만)는 착하고 연륜 있는 엘리트 공무원들이 이 "피 투성이의" 문제에서 주도권을 갖는 명예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귀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당시 나는 일종의 본디오 빌라도의 감정과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를 심판할 자가 누구인가?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생각을 가진 자가 도대체 누구인가? 최종 해결책이 유럽 전체에 적용될 경우 정말 다양한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회의(즉, 반제 회의)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회의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최종 해결책 실행을 위해 모든 노력들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그곳의 공무를 담당하는 다양한 관청의 사람들은 단지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는 데 그친 것.. 2020. 12. 20.
(5장, 두 번째 해결책 : 수용) 옮겨놓을 수 없다면 유일한 해결책은 전멸 1939년 9월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사실상 유대인들의 이주, 이민의 가능성은 시간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었다. 전쟁 중에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옮기는 일은 대충 생각해봐도 매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했다. 동부에서는 유대인들이 이미 강제 거주구역(게토, Ghetto)으로 수용되고 있었고, 또한 돌격대에 의해 살해당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나치정부는 공개적으로 전체주의적으로 되었고, 공개적으로 범죄적 성향을 띄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친위대 정보부와 정규 국가보안경찰이 통합된 제국중앙보안본부(R.S.H.A)가 등장했는데, 1941년에 아이히만은 제국 중앙 보안본부 제 IV-B-4부의 직책에 임명되었다. 집무실에서는 "강제이주"가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공식.. 2020. 12. 13.
(2장, 피고) 아이히만, 신 앞에서는 유죄라고 느끼지만, 법 앞에서는 아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신 앞에서는 유죄일 수 있지만, 법 앞에서는 유죄가 아니다." 아돌프 아이히만의 담당 변호사였던 로베르트 세르바티우스(Robert Servatius of Cologne) 박사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답변한 내용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이라는 최종 해결책을 배경으로 하지 않아도 이 문구는 어딘가 섬뜩한 부분이 있다. 아이히만은 독일의 패전이 확실시되었을 때, 도피하여 아르헨티나에 숨어 살았다. 숨어 산다는 것의 배경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1960년 5월 11일 저녁 부에노스아리레스 교외에서 체포되어 9일 후 이스라엘로 압송되었고, 1961년 4월 11일 기소되었을 때, 아이히만은 "기소장이 의미하는 바대로 무죄"를 주장한다고 이야기한다. 무죄를 주장한다는 것의 핵심은 피고가 .. 2020.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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