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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사회

(7장, 반제회의, 혹은 본디오 빌라도) 빌라도는 손을 물로 씼으면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했다.

by YBK note 2020.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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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이히만)는 착하고 연륜 있는 엘리트 공무원들이 이 "피 투성이의" 문제에서 주도권을 갖는 명예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귀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당시 나는 일종의 본디오 빌라도의 감정과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를 심판할 자가 누구인가?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생각을 가진 자가 도대체 누구인가? 

 

최종 해결책이 유럽 전체에 적용될 경우 정말 다양한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회의(즉, 반제 회의)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회의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최종 해결책 실행을 위해 모든 노력들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그곳의 공무를 담당하는 다양한 관청의 사람들은 단지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사람들은 그러한 것에 대한 일절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반제 회의가 아이히만에게 준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그가 갖고 있던 생각, "폭력을 통한 그러한 피투성이의 해결책"에 대한 의구심 자체가, 주변 사람들의 영향으로 한순간에 사라졌다. 우리가 주변에서 유망하다고 하는 사람들 조차 이러한 문제에서 명예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싸웠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일을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이히만의 양심을 무마시킨 가장 유력한 요소는

실제로 최종 해결책에 반대한 사람을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이와 더불어 유대인들의 대한 조치들을 이행하기 위해 법률적인 조치들을 행했다. 여기서 국가가 필요한 이유가 나온다. 법률전문가들은 유대인 희생자들이 무국적 상태가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고, 실제로 그러한 조치들을 가장 중요하게 이행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나라도 그들의 운명에 대해 문제 삼지 못하게 되고, 또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국가에서 그들의 재산을 몰 수 할 수 있었다. 

 

또한 시온주의의 어둡고 참담한 모습도 있었다. 자기 민족을 파괴함에 있어 유대인 지도자들이 한 역할은 실로 지대하며, 너무나도 참담하고 어둡다. 유대인 학살의 어두운 이면이 바로 이러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대인 장로회는 아이히만과 그의 부하들을 통해 각 열차를 채우는데 얼마나 많은 유대인이 필요한지에 대해 들은 다음 수송될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어주었다. 유대인은 그들 스스로를 파괴했다. 유대인 국가를 건설한다는 명목 하에 유대인 지도자들의 손에 의해 희생되야할 유대인들의 명단이 작성되고 이송되었다. 그리고 지도자들은 살아남았다. 숨거나 탈출하는 사람들은 유대인 특별 경찰에 의해 검거되었다. 아이히만이 아는 한에서 사람들은, 유대인들은 그런 조치와 협력들을 거절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유대인 사람들은 자신의 장례식장을 향해 걸어 나갔다. 

 

어두운 진실 중 또 하나는 만일 유대인이 정말 국가도 없는 상태로, 정말로 조직되어 있지 않았고, 또 지도자가 없었더라면 혼란과 수많은 불행들이 있었겠지만, 희생자들 전체가 400만, 500만, 600만에 달할 리가 거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자기 민족을 스스로 파괴하고, 그 안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유대인 지도자들을 보며 우리 한반도에 있었던 일들이 나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유대인들과 우리는 많은 부분 닮은 구석이 있다. 

 

"그 누구도 제게 와서 제(아이히만)가 의무를 수행하면서 한 어떤 일에 대해서 저를 책망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목사)는 제게 와서 고통을 줄일 방도를 찾았습니다만, 실제로 제가 그러한 직무를 수행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히만의 이러한 답변은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러한 부분은 집 안에서의 사소한 가정교육에서부터 어떠한 조직의 구성원 또는 리더, 지도자가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소규모의 조직이라고 해도, 거기서 파생되는 분위기와 내부적인 규율 등과 더불어 리더와 팔로워들 간의 상호작용에 따라서 그 조직이 나아가는 방향은 분명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특히, 나는 아이를 기르고 있는 부모로써 아이가 어떠한 것에 대해 잘못하고 있을 때, 부모가 그것을 바로 잡아주지 않으면, 나중에 그 아이가 커서 아이히만과 같은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제게 와서 그러한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저를 책망한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우리의 딸과 아이히만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솔직히 말이 안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했다. 잘못된 행동이 일상화된 조직에서는 그 행동이 더이상 잘못된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그 조직에서 적어도 단 한명이라고 그러한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면 그 조직은 다시 살아 숨쉬기 시작한다. 그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모두가 "YES"라고 말할 때 "NO"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것이 악의 평범성이자, 악이 무서운 이유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국내도서
저자 :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 김선욱역
출판 : 한길사 200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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