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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사회

열하일기가 우리에게 주는 철학적 메시지(고전 독후감)

by YBK note 2020.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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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아, 연암을 만나자. 열하일기

열하일기
국내도서
저자 : 박지원 / 리상호역
출판 : 보리 2010.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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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적 메시지란 무엇인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 깊이 있게 통찰하고 해석하는데 필요한 열쇠라고 생각한다. 열하일기는 1780(정조 4)에 연암 박지원 선생이 청나라 고종(건륭제)의 칠순연에 참석하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서부터 심양, 산해관, 북경, 열하 그리고 마지막 북경까지 이동하면서 당시에 본인이 새롭게 보고 경험한 것에 대한 소회를 적은 기행문이다. 단순한 여행 답사기로 볼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가 글에 간접적으로 담아내는 함의를 읽어냄으로써, 현대사회에서 적용할 수 있는 철학적 열쇠 3가지(이분법적 사고를 탈피하는 변증법적 사고, 무능한 지식들에 대한 비판적 사고, 혁신을 위한 과제 설정)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선과 악’, ‘주관식과 객관식’, ‘천사와 악마처럼 주변에서 흔히 이항대립의 구조를 쉽게 볼 수 있다. , 이분법적 사고는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사고방식일 수 있다. 조선의 당시 상황은 어떠했는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병자호란의 전후 혼란과 붕당정치의 갈등 심화로 조선은 상호대립의 극을 달리며 이분화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연암은 편향된 사고를 하지 않으며,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용후생의 북학론(실학)의 중상학파였다는 점에서 당시 자신의 밥그릇 챙기기에 바빴던 기득권 세력과 비교할 때, 시대 흐름의 변화를 읽어내어 조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통찰했던 연암의 자세는 분명히 본받을 만하다.

 

   열하일기 서두에서 수역 홍명복과의 대화 중 천하 백성들이 법도를 지킨다는 것은 저 강기슭과 물의 짬과 같은 것일세. 도를 다른 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저 물과 기슭 짬에서 찾아야 할 것이네.’라고 했는데, 이 대목에서 연암은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변증법적 사고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또 한편으론, 한 조직의 리더인 나에게 이 구절은 참 많은 의미로 다가왔다. 리더로써 조직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기슭과 물의 짬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권한의 융통성이라고 생각했다. 부하가 리더에게 A를 건의했을 때, B라는 제한사항으로 승인할 수 없다고 단편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B라는 제한사항이 있으니 내가 해줄 수 있는 C라는 방법을 해볼 것을 재제안 하는 것에는 분명한 온도 차이가 있다. 후자는 분명히 리더가 자신의 권한 내에서 행할 수 있는 융통성이며, 어떤 방법이 부하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받아들여질지는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융통성을 가진 리더인가?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자문해볼 필요가 있는 질문이다. 융통성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기 위해서 리더는 반드시 교양(지식)을 쌓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교양이 없는 전문가보다 위험한 존재는 없다.’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의 교양인 또는 지식인이라고 여겨지는 기득권층은 진정한 의미의 교양이 없었다. 연암은 천하를 위한 자는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쓸모 있는 제도라면, 그 법이 오랑캐한테서 나왔다해도 머뭇거리지 말고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며, 깨진 기와조각과 똥거름을 예로 들면서 노골적으로 조선의 무능한 지식인(기득권 세력)을 비판했다. 패러다임의 진화는 복고와 발전이 동시에 일어나는 나선형의 형태로 진행된다. 하지만 조선의 지식인, 즉 글씨를 익힌 사람들은 옛사람들의 글씨를 직접 보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쇠나 돌에 새긴 금석문을 보며 그대로 베낄 뿐, 그 안에 담겨있는 미묘한 감정이나 기운과 같은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했고, 평생 글과 고서를 읽고 입으로 외워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을지라도, 현장 감각이 무뎠기에 진정으로 조선의 발전을 위해서 징비(懲毖)하지 못했다. 결국, 이것은 패러다임의 복고로만 이어질 뿐, 더 이상의 진보는 불가함을 의미했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진정한 의미의 교양을 갖추지 못했고, 이것이 앞으로 조선의 운명을 결정했으리라.

 

   진정한 의미의 교양(지식)은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연암은 스스로 총명한 체하는 자들을 경계한다고 했으며, 소크라테스는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사람이 아는 척만 하고 있을 뿐 사실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어떠한 계기를 통해 무지(無知)의 지()의 상태가 되면, 이 때 비로소 배움에 대한 욕구와 필요성이 생겨나며, 이 후 학습과 경험을 쌓으면서 알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지()의 지() 상태를 숙달의 최종 상태로 볼 수 없다. 교양의 궁극적 상태는 지()의 무지(無知)이다. ,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태이며, 사실을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상태는 반드시 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달성할 수 있다. 오직 현장에서만 우리들의 문제를 알 수 있고, 현장에서 조직의 혁신을 위한 과제를 도출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도대체 어떻게 혁신을 위한 과제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에 앞서 혁신이란 무엇인가? 혁신은 지금까지 당연했던 일이 당연해지지 않는 것이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을 의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혁신은 상식을 교양이란 렌즈를 통해 보는 것이며, 핵심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혁신을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 설정이 필수적이며, 과제가 설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떠한 혁신도 일어나지 않는다. 과제 설정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양을 쌓아야 하고, 상식을 극대화하여 눈 앞에 펼쳐진 익숙한 현장을 다르게 볼 줄 알아야 한다. 현장을 다르게 보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조선의 문화와 풍속만 아는 사람에게 조선의 풍속에 대해 조선에서는 왜 이런 것을 할까?’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지리적인 공간이나 역사적인 시간의 폭을 넓은 시야로 볼 줄 아는 사람만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그제야 지금까지 당연했던 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연암이 왕명을 받아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이 조선에서 경험한 일반적인 상식을 다르게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중국의 새로운 풍속과 좋은 문화들을 보며, 자신의 시야와 경험의 폭을 넓혔기에 우물과 물통 이는버,, 수레, 양털모자, 말 다루는 법, 온돌 등 조선의 틀 안에 갇혀있던 우리들의 상식을 탈피하여 조선의 혁신을 위한 과제들을 염출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암은 조선의 혁신을 이뤄내지 못했다. 당시 조선은 그러한 혁신의 과제를 수용할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북경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먹구름이 사방에서 밀려들어 바람과 천둥이 드세게 일었다. 어찌 된 일인지 무섭고 떨리는 품이 갈 적과 달랐다. 가고 오는 길이 이리도 딴 판이다.’라고 적었는데 아마도 연암이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할 것에 대한 마음상태를 간접적으로 투영한 것이며, 리더의 자리가 얼마나 고독하고 힘든 자리인지 보여주는 대목일 것이다. 조직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의 분위기이다. 아무리 훌륭한 생각과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그것을 너그러이 수용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면, 그 조직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리더는 조직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 조직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리더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향으로 조직을 움직일 수 있도록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풀 한포기씩 일일이 잡고 풀의 방향을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바람을 일으켜야 하는가(혁신의 과제)를 정해 큰 바람을 일으켜 전체 풀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열하일기를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여행답사기 였지만, 연암이 마치 책을 통해 자기 뜻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을 나에게 하소연하며, 나를 꾸짖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 지식인들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내용을 읽으면서, 내가 괜히 뜨끔했던 까닭일 것이다. 부끄러운 리더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어쩌면 연암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진정한 철학적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부하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리더인가? 최고의 리더가 될 수는 없어도, 유정 유일(惟精惟一)의 정신으로 끊임없이 정진하여 적어도 부끄러운 리더가 되지는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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