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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사회

(3장, 유대인 문제 전문가) 그들은 바보들의 천국에 살았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by YBK note 2020.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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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의 무능성은 판단의 무능성으로 이어진다.

최종 해결책의 진짜 기술자는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이다.

이 말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라는 것을 "진정한 악"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진정한 악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대중들에게도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진정한 악은 평범한 탈을 쓴, 우리 주변의 익숙한 사람들을 통해 행해지며, 악에 대한 이목의 집중은 진정한 악을 향하는 것이 아닌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을 향한다.

 

한나 아렌트는 이야기한다. 아이히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자"였다고 이야기하면서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한다. 악이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있음을 아렌트가 우리에게 말하려 했다고 생각해볼 수 있음과 동시에 진정한 악은 우리에게 모습을 비추지 않는다는 의미도 동시에 해석해볼 수 있다. 아이히만은 허풍이 정말 심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허풍"으로 아이히만은 교수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러한 "허풍"이야말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단어가 아닐까? 현실에서는 꿈꾸거나 이룰 수 없는 것들을 말이나 생각을 통해서라도 이루고 싶은 그러한 평범한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진정한 악은 그러한 사람들을 통해 자신들의 악을 실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의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반유대주의에 대해 어떻게 유대인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어떻게 적응했는가?"라는 질문에 아이히만은, "요리할 때 먹는 것만큼 뜨거운 것은 없다."라고 답했다. 

아이히만의 답변이 무슨 의미일까에 대해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뒤쪽에서 언급된 "그들은 바보들의 천국에서 살았다."라는 이야기에서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었다. 1938년 11월의 크리스털 나흐트(깨진 유리의 밤)를 통해 유대인에 대한 해결책을 실천하기 위한 기반을 다졌다. 유대인의 학살은 바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아이히만의 답변에서 "요리할 때"라는 것은 바로 "최종 해결책"을 의미하는 것이고, 당장 요리를 해서 먹는다면 입천장이 데일만큼 뜨거울 수 있다는 것을 볼 때, 만든 요리를 음미해서 먹기 위해서는(최종 해결책을 실행하기 위해서) 그것을 위한 사전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떠한 법 아래에서도 삶은 가능하다."

"하지만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허용되지 않는지를 완전히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은 살 수 없다."

 

크리스털 나흐트의 목적이 독일과 유대민족 간의 참을만한 수준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나는 진정한 악의 무서움에 대해 다시 한번 놀랐다. 그것을 구상하고 계획한 것도 놀랍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거부감과 죄의식 없이 할 수 있도록 판을 구상했다는 것이 더욱 놀랍고도 소름 끼치는 점이다. 시온주의자들과 당시 동화론자들은 이러한 크리스털 나흐트를 "유대인의 부흥""독일계 유대인의 위대한 건설운동"이라는 제목으로 포장해버렸다. 그들에게는 사람들에게 인식의 변화를 시키는 것이 제1순위 조치사항이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그러한 범죄가 현실의 한 부분으로 되어버렸다. 즉, 시온주의자들은 차근차근 사람들이 갖고 있는 현실에 대한 대면 능력을 빼앗아 가고 있었다. 

 

아이히만이 유대인의 최종 해결책을 실행한 최종 실행자와 결정자처럼 보이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이다. 그는 관청 용어라는 공허한 말들을 주입시켜, 나치당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현실 자각 능력을 떨어뜨렸고, 이는 곧 말의 무능력함으로 이어졌다. 이는 실제로, 재판에서도 아이히만이 관청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는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는 것을 통해 정확히 보였고, 말의 무능력함은 곧 생각의 무능력함으로 이어졌다. 또 이것은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없는 무능력함으로 이어져, 결국은 진정한 악의 계획대로 우리는 허수아비처럼 그 계획을 아무런 생각과 의심, 비판 없이 실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이히만이 "시온주의"에 대해 자세히 연구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유대인 지도층이 었던 사람들도 시온주의자였던 동시에 이상주의자였다. 이상주의자란 "자신의 이상을 삶을 통해 실천하는 사람"이며, 그들은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것, 특히 어떤 사람이라도 희생시킬 각오가 된 사람들이었으며,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아버지마저도 죽음으로 보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완벽한 이상주의자들도 개인적인 감정과 느낌이 있지만, 자신의 이상과 충돌한다면, 그것이 자신의 행동을 방해하도록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대인 지도자였던 "루돌프 카스트너 박사"는 헝가리에서 유대인 추방을 협상했는데, "질서와 평화"라는 시온주의의 이상을 위해 동료 유대인을 희생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에게는 어느  순간이든 "의기양양한 느낌"을 가져다 주었던 그 자신들의 문장을 하나도 잊지 않았다.

 

아이히만의 사고가 완전히 잠식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운명이 내게 부여한 재능 가운데 하나는 진실에 대한 능력입니다."라고 하면서, 아이히만은 이미 타인과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태였고, 이렇게 그를 지배한 상투어는 그가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도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잘못된 믿음이 정신에 깊게 새겨지면, 현실성이 결여되어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을 할 수 없다.

600만 유대인의 학살에 대해 오직 아이히만을 탓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간절하게 출세를 원하는 평범한 사람이었으며, 그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은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진정한 악은 그를 통해 자신들의 계획을 실천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진정한 악의 계획을 실행하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현실과 동떨어져서 묵묵히 계획을 이행했을 뿐이다. 

 

"말하는 능력"은 곧 "판단하는 능력"을 지배한다.

그리고, "판단하는 능력"은 곧 "현실을 자각하는 능력"을 결정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국내도서
저자 :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 김선욱역
출판 : 한길사 200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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