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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사회

(6장, 최종 해결책 : 학살) 내 어깨에 놓인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가라고 살인자들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by YBK note 2020.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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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의무를 이행하는 가운데, 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목격해야만 하는가. 내 어깨에 놓인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가라고 살인자들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유대인과 관련된 모든 일들이 진행됨에 있어 모든 문서들이 그들이 제정한 엄격한 "언어 규칙"을 따랐고, 그것이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그러한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고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한나 아렌트는 이야기한다. 평범한 사람이 범죄에 대한 내적 반감을 극복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그리고 일단 그것을 극복했을 때 그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아는 것이 법적으로는 그다지 적합한 것이 아니었다 해도, 정치적으로는 굉장히 중요하고 큰 관심사가 될 수 있다.

 

유대인들을 죽였던 수많은 살인자들은 사디스트나 천성적인 살인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을 수도 있다. 돌격대 부대는 독일의 어느 일반 부대보다 범죄기록을 더 많이 갖고 있지 않은 군대 조직인 무장 친위대로부터 징발되었다. 그리고 그 지휘관들은 당시에 지식인이라고 여겨도 무방한 대학 학위를 가진 친위대 엘리트 가운데 선택되었다. 그들은 사랑과 연민, 동정심을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이었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었을 수 있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나치의 핵심요원들이 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한 것은, 이러한 모든 정상적인 사람들이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는데서 느끼게 되는 동물적인 동정심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였다. 그리고 그것의 해결책은 아주 단순했으며, 또한 매우 효과적이었다. 본능을 뒤집어서 자신이 하는 행동의 영향이 자기 자신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벗어나 오히려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들의 이러한 언어 규칙은  그 자체가 암호였고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을 현실과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의 정신과 생각 깊은 곳에 뿌리 박혀있었다. 이러한 체계의 통상적인 효과는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그와 같은 사람들이 모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살상과 거짓말에 대한 그들의 오랜 정상적인 지식과 동일시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추방과 수용, 그리고 학살이라는 일련의 과정에 있어 앞의 1, 2단계는 학살이라는 최종 단계를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사기였을 수 있다. 아이히만은 이러한 일련의 사고 개조 과정의 표본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당시 나치 전범들에게 가장 많이 제기되었던 질문은 유대인 학살이 자신의 양심에 어긋난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들은 이야기한다. 그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하지만 실제와는 달랐다. 그들이 진정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면, 얼마든지 회피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처형 부대(돌격대) 부대원들이 심각한 처벌을 받지 않고서도 자신의 임무를 중단하기란 놀랄 만큼 쉬웠다. 

 

뉘른베르크 보고서에서는 처형에 참여하기를 거절한 이유로 사형을 받은 친위대 대원들을 단 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다. 다른 부대로 전근을 신청하는 방식으로 임무를 회피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다. 분명한 것은 개개인의 경우 어떤 징계성의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생명의 위협을 가할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아이히만은 친위대 대원이었기 때문에 군법회의에 회부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상관)은 어떤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의 일을 해낼 수 있는지 그 한계를 명확히 알았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맹세한 대로 모든 명령에 복종했고, 자신이 의무를 완수하는데 상당한 자부심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말의 개조를 시작으로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고는 멈춰버렸다. 그들은 "살인"을 "안락사 제공"으로 이해했다. 1944년 여름에 바바리아로 갔던 한 여성지도자는 독일의 다가올 패배에 대해 농부들에게 솔직히 말했고, 여기에 대해 훌륭한 독일인들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총통이 자비심 많게도 모든 독일 국민들을 위해 전쟁이 불행한 종말을 맞을 경우를 대비하여 가스 사용을 통해 편안한 죽 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보면서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나치가 인류에 대해 행한 잔악성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것(진정한 악)이 평범한 사람을 악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질문, 그리고 악한 행위 또는 사고, 특히 정상적이지 않은 사고를 해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러시아인들은 결코 우리를 잡지 못할 것입니다. 총통께서는 결코 그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 훨씬 전에 그가 우리에게 가스를 줄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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